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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데우스 2부 -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석탄이 2019. 4. 30. 00:02

이집트인들이 파이윰 호수와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외계인의 도움 덕분이 아니라 뛰어난 조직력 때문이다.

문자는 사람들이 이런 허구적 실체의 존재를 더욱 쉽게 믿도록 만들었다. 문자 덕분에 추상적 상징의 매개를 통해 실재를 경험하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협력 네트워크의 힘은 진실과 허구의 절묘한 균형에 달려 있다.

그들의 힘은 자기들의 허구적 믿음을 순종적인 실제에 강요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돈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정부는 무가치한 종잇조각을 만들어 그 가치를 선언한 다음, 그 종잇조각을 이용해 다른 모든 것의 가치를 계산한다.

부모의 이혼을 포함해 아이는 모든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일신론자들은 죽는 날까지 이런 망상을 붙들고 산다.

허구 신화 그리고 오류가 넘쳐나는 책에 대고 진실을 말할 것을 맹세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신화는 계속 인류를 지배하고 있고, 과학은 그런 신화를 더 강화할 뿐이다.

종교를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종교를 규정하는 것은 신이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니라 사회적 기능이다. 종교는 인간의 사회구조에 초인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떤 것이다.

종교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대규모 협력을 조직하는 도구라고 말하면, 종교를 영성으로 가는 최고의 길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간극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좁듯이, 종교와 영성 사이의 간극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다.

이론상으로 과학과 종교는 둘 다 다른 무엇보다 진리에 관심을 두지만, 각기 다른 진리를 지지하므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학도 종교도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둘은 쉽게 타협하고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협력도 할 수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사실 근대는 놀랍도록 간단한 계약이다.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는 인간이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 안에서 한 역할을 맡는다고 믿었다. 근대 이후의 문화는 그런 장대한 우주적 계획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근대라는 계약은 이렇듯 인간에게 굉장한 유혹인 동시에 무지막지한 위협이다.

기도, 선행, 명상이 위안과 용기를 줄 수는 있지만, 기아, 역병, 전쟁 같은 문제들은 성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있으면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많이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람들이 경제를 네 이윤이 곧 내 손실인 제로섬 게임이 아닌, 네 이윤이 곧 내 이윤인 윈윈 상황으로 보게 함으로써 세계 화합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경제가 얼어붙지 않는 동시에 생태계도 끓어오르지 않게 하는 이중의 레이스를 과학이 언제까지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까. 최상위 계층을 위한 최첨단 논아의 방주에 대한 믿음은 현재 인류의 미래는 물론 지구 생태계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이다.

이렇듯 근대 계약은 우리가 힘을 얻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기를 기대한다. 아마 우리는 윤리, 미학, 동정이 없는 암흑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인류를 구원한 것은 수요공급의 원칙이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

인본주의는 지난 몇백 년 동안 세계를 정복한 혁명적인 새 교리이다.

현대인은 외도에 대해 저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어떤 입장을 취하든 성경과 신의 계명을 내세우기보다는 인간의 ㄱ마정을 내세워 그 일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인본주의는 크게 세갈래로 나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의 종교전쟁 끝에 어쨌거나 21세기 초에 우리가 선택 할 만한 것은 자유주의뿐이다.

21세기 초, 지놉의 열차가 다시 정거장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열차는 아마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정거장을 떠나는 막차가 될 것이다. 이 기차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좌석을 얻기 위해 당신은 21세기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생명공학과 컴퓨터 알고리즘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남아있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자본론>을 읽을 시간에 인터넷과 인간 게놈을 공부하라고 할 것이다. 고대 문헌을 외우고 그 내용에 대해 논쟁하는 대신, 과학 논문을 읽고 실험하는 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유전공학과 인공지능이 잠재력을 온전히 드러내면, 자유주의, 민주주의 , 시장경제는 돌칼, 카세트, 이슬람교와 공산주의만큼이나 낡은 것이 될 것이다.

인본주의가 감정을 신봉한 덕분에, 우리는 근대 계약의 열매를 어떤 대가도 없이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